파리로 여행 온 사람들의 필수 코스는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두 곳은 늘 붐빈다. 조금이라도 한산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조건 일찍 가는 것 뿐이다.
오르세 미술관의 오픈 시간에 맞춰 일찍 길을 나섰다. 다행히도 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들은 다들 저마다의 할인 혜택이 있는데, 오르세 미술관의 할인은 좀 더 관대하다는 느낌이다. 보통은 성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18~30세까지 할인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건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가장 현실적인 건 이 나이대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할 확률이 적다는 것일 테다.
하지만 왠지 나는 달리 해석하고 싶었다. 30세까지는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을 보며, 진정으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확률이 적기 때문이라고. 그림이나 조각들을 하나 하나 뜯어보며, 그곳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냥 '눈팅'에 그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분명 나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경험치가 많아질수록 사물이나 작품들이 가슴에 다가오는 느낌도 확연히 다르다.
아무튼 수많은 작품들이 있는 오르세 미술관이지만 오로지 나의 관심은 고흐였다. 하지만 온 김에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도 감상하기로 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가장 시선을 사로잡은 인상파 화가는 마네가 아닐까 싶다. 풀밭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 피리부는 소년이 모두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풀밭위의 점심 식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누드로 앉아있는 여자이다. 옷을 입고 있는 다른 누구보다 당당한 그 표정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튼실한 허벅지와 두툼한 뱃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도 매력적인 모습 중 하나이다. 그에 비해 남자들은 무언가 무기력해 보인다. 마치 '위선'을 양복으로 감춘 듯한 느낌이다.
올랭피아는 왠지 슬퍼보이는 그림이다.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건 풀밭위의 점심과 마찬가지이지만 표정이 상당히 쓸쓸해 보인다. 누군가로부터 온 꽃다발 선물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그 표정이 참 슬프다.
고흐의 그림들은 오르세미술관 2층에 있다. 그 명성만큼이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이후 여행 장소인 아를과 오베르 쉬즈 우아즈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과 오베르의 교회 그림은 사진으로 찍어뒀다. 실제 장소와 비교해보기 위해서였다.
오르세 미술관은 가셰박사의 초상과 고흐의 자화상, 고흐의 방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고흐의 방은 네덜란드에 있는 반 고흐 뮤지엄에 있는 방과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벽에 걸린 초상화 두 점과 침대 머리맡의 풍경 그림이 바뀌어 있다. 색감도 좀 다른데, 개인적으로는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그림이 더 따뜻해 보였다.
사실 7년 전에도 난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했었다. 하지만 그 땐 미술책에 나왔던 명화들이 내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었다. 오로지 기억에 남는 것이라곤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있는 큰 시계 뿐이었다.
이 하찮은 경험을 가지고, 오르세 미술관에 다녀왔었다라고 얘기하는 건 부끄러운 일인데 이번 여행으로 그나마 만회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여행에서는 7년 전에 놓쳤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냥 눈도장만 찍고 지나쳤던 그림들을 하나하나 다시 보기도 했고, 오르세 미술관 미니어처와 단면 모형들도 볼거리였다.
또 오르세미술관 밖으로 보이는 몽마르뜨 언덕의 사크레퀘르 사원 등 파리의 풍경들도 놓칠 수 없는 멋진 광경이다.
이제 고흐를 찾아 떠난 여행 중 고흐의 그림들을 보기 위한 여행의 전반전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고흐가 머물렀던 흔적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후반전이 시작될 예정이다.
고흐 전을 다녀왔다.'고흐에서 피카소까지'가 처음이었고,'반 고흐전'이 두번째다.얼마나 고대하던 반 고흐 콜렉션이란 말인가?처음 본 덕수궁 돌담길에 눈길도 주지 않고 발걸음을 보챘다.역시 기대는 실망의 어버이인 걸까?생각만큼이나 어떤 울림 같은 것은 없었다아니, 울림은 고사하고 마음 한켠이 불편했다.이 불편함을 모라고 딱히 정의하기는 어려운데.... 음위대한 화가의 대작 앞에서 납작하게 조아리고,그 아우라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 같은 위압감이라고...
# gmail내가 gmail을 사랑하는 것은 일단 그 어마어마한 용량 때문이다. 지금이야 대용량 메일을 지원하는 곳이 많아졌지만, 이런 평가는 그 혁신이 처음 등장했던 당대에 대한 동시대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당시 hotmail이 5MB를 지원하는 상황에서 지메일은 그 보다 200배가 많은 2GB를 제공했다. 이것은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다 본 메일을 삭제할 필요가 없어졌고, 커뮤니케이션의 흔적을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텍스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