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농담에는 묘한 스릴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아슬아슬하며, 성희롱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농담을 하면서도 이 정도는 괜찮을까, 너무 심할까하고 고민하기 마련이다.
나는 성적 농담이 무조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적 농담은 성을 은밀한 것으로 만들지 않고, 공론화하는 데 일조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성적 농담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이냐이다.
어디까지가 성적 농담이고, 어디부터가 성희롱일까? 사실 답은 없다. 이는 상황과 상대 등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적 농담에 대한 모범 답안도, 성희롱 예방 안내서도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 경계란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가령, 흔한 성적 농담의 소재로 등장하는 '가슴'을 예로 들어보자. 여자들의 작은 가슴은 성적 농담의 단골 메뉴이다. 공중파 TV에서 이 소재로 농담을 해도 모두 웃으며 받아 들인다. 예전 개그콘서트에서 김지혜는 작은 가슴을 개그의 주된 소재로 삼았으며, 지금도 이곳 저곳에서 작은 가슴에 대한 농담이 일상적으로 오고간다. 이상하게도 시청자들은 이에 대해 큰 불편함을 호소하지 않는다. 꼭 TV뿐만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작은 가슴에 대한 농담은 흔히 오고가고, 그걸 듣는 여성도 함께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가슴이 커지면 문제가 된다. 여성의 큰 가슴은 성적 농담이 될 수 없으며, 매우 농밀하며 상대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으로 들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TV에서나 일상 생활에서나 큰 가슴에 대한 농담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이런 농담이 오갈 때는 시청자도 그 여성도 꽤나 불편해 한다.
이런 극명한 반응은 작은 가슴은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없는 반면, 큰 가슴은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암묵적인 동의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즉,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없는 성적 농담은 얼마든지 사람들이 웃으며 흘려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있는 성적 농담에 대해서는 일종의 불편한 감정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해하는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남자들을 소재로 한 성적 농담의 대표적인 건 '조루'나 '정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정력에 좋다라는 이야기나 그것을 비유한 표현들은 흔하게 나온다. 또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벌써 끝났냐는 식의 조루를 표현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우리들은 모두 이것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며 웃어 넘긴다.
하지만 성기의 크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다르다. 성기의 크기를 남성성을 상징하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적 농담에서 함부로 성기의 크기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성기의 크기는 어떤 행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것은 그 자체로 성적 대상이 돼버린다. 남자들 역시 크기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허용하는 성적인 농담이란 어떤 이를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느냐, 아니냐 또는 성적인 대상으로 상상할 여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문제가 아닌가 싶다. 서로 애인이나 부부 사이가 아닌 이상 우리는 누군가에게 성적 대상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편한 성적 농담은 나를 한낱 우스운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그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때문에 불편하고 수치스러운 것이다.

이번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발언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여학생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성희롱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는 어떠한 농담의 요소도 들어있지 않았다. 다만 예쁜 여학생들을 남자들은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며, 권력이란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많은 사람들이 분개한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무고한 여학생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성적인 대상으로 이야기한 것도 모자라 '성상납' 등 권력으로 성을 이용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적 농담의 도를 훨씬 비켜나간 것이었다.
사실 작은 가슴이나 조루, 정력 등을 소재로 한 성적 농담은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우리는 왜 이런 내용에는 관대할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단지 성적인 대상으로 지목하지 않는다면, 그 농담은 괜찮은 것일까? 내 성적 농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 성적 농담의 자격은 과연 무엇일까? 의문을 던져본다.
나는 성적 농담이 무조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적 농담은 성을 은밀한 것으로 만들지 않고, 공론화하는 데 일조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성적 농담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이냐이다.
어디까지가 성적 농담이고, 어디부터가 성희롱일까? 사실 답은 없다. 이는 상황과 상대 등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적 농담에 대한 모범 답안도, 성희롱 예방 안내서도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 경계란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가령, 흔한 성적 농담의 소재로 등장하는 '가슴'을 예로 들어보자. 여자들의 작은 가슴은 성적 농담의 단골 메뉴이다. 공중파 TV에서 이 소재로 농담을 해도 모두 웃으며 받아 들인다. 예전 개그콘서트에서 김지혜는 작은 가슴을 개그의 주된 소재로 삼았으며, 지금도 이곳 저곳에서 작은 가슴에 대한 농담이 일상적으로 오고간다. 이상하게도 시청자들은 이에 대해 큰 불편함을 호소하지 않는다. 꼭 TV뿐만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작은 가슴에 대한 농담은 흔히 오고가고, 그걸 듣는 여성도 함께 웃으며 이야기한다.

<이미지 출처 : 마이데일리>
그런데 이 가슴이 커지면 문제가 된다. 여성의 큰 가슴은 성적 농담이 될 수 없으며, 매우 농밀하며 상대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으로 들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TV에서나 일상 생활에서나 큰 가슴에 대한 농담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이런 농담이 오갈 때는 시청자도 그 여성도 꽤나 불편해 한다.
이런 극명한 반응은 작은 가슴은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없는 반면, 큰 가슴은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암묵적인 동의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즉,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없는 성적 농담은 얼마든지 사람들이 웃으며 흘려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있는 성적 농담에 대해서는 일종의 불편한 감정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해하는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남자들을 소재로 한 성적 농담의 대표적인 건 '조루'나 '정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정력에 좋다라는 이야기나 그것을 비유한 표현들은 흔하게 나온다. 또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벌써 끝났냐는 식의 조루를 표현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우리들은 모두 이것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며 웃어 넘긴다.
하지만 성기의 크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다르다. 성기의 크기를 남성성을 상징하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적 농담에서 함부로 성기의 크기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성기의 크기는 어떤 행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것은 그 자체로 성적 대상이 돼버린다. 남자들 역시 크기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허용하는 성적인 농담이란 어떤 이를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느냐, 아니냐 또는 성적인 대상으로 상상할 여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문제가 아닌가 싶다. 서로 애인이나 부부 사이가 아닌 이상 우리는 누군가에게 성적 대상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편한 성적 농담은 나를 한낱 우스운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그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때문에 불편하고 수치스러운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중앙일보>
이번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발언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여학생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성희롱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는 어떠한 농담의 요소도 들어있지 않았다. 다만 예쁜 여학생들을 남자들은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며, 권력이란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많은 사람들이 분개한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무고한 여학생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성적인 대상으로 이야기한 것도 모자라 '성상납' 등 권력으로 성을 이용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적 농담의 도를 훨씬 비켜나간 것이었다.
사실 작은 가슴이나 조루, 정력 등을 소재로 한 성적 농담은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우리는 왜 이런 내용에는 관대할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단지 성적인 대상으로 지목하지 않는다면, 그 농담은 괜찮은 것일까? 내 성적 농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 성적 농담의 자격은 과연 무엇일까? 의문을 던져본다.
2010/07/2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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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터앤미디어의 생각
Tracked from tattermedia's me2DAY 삭제강용석 의원의 발언은 여학생을 성적인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성희롱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엔 어떤 농담의 요소도 들어있지 않았다. 다만 남자들은 예쁜 여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며, 권력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많은 사람들이 분개한 까닭이다.
2010/07/2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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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크게 공감이 가네요.
2010/07/20 14:26그냥 의문이 생겨서 끄적여본 생각입니다 ^^ 뭔가 더 말할 게 있는 거 같은데 정리가 안되네요 ㅜ.ㅜ
2010/07/20 15:47뻔하지요, 술퍼먹어서 기억이 안난다고 할게 뻔한일.
2010/07/20 15:24그래서 술은 사람하고 마셔야....
저 발언은 술자리 전에 한 얘기 아니에요? 기억 안나도 들은 사람들은 있으니...
2010/07/20 15:48언어라는건 사람끼리 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건데, 저 동물은 잘 모르는듯 합니다. ㅋㅋ
2010/07/21 15:21한나라당 요즘 내분이 심각하네요.
2010/07/21 10:23벌여놓은 일도 많은데, 저러다 뒷감당 어떻게 하려는지들... (혀끌끌)
그나저나 '주성영 의원'이 인터뷰를 했던데 내용을 제대로 못 들어서 아쉽네요 (쓴웃음)